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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인 더 올림피아] 역대 미스터 올림피아를 알고 있나요? Part.1
개근질닷컴| 등록2019-06-12 16:44| 수정2019-06-17 10:57 facebook twitter

▲ 트로피를 들고 있는 14번째 미스터 올림피아 숀 로든(Shawn Rhoden). 사진=Mr. Olympia 공식 홈페이지.


[개근질닷컴] 언젠가 한국인 중에도 미스터 올림피아가 나올 수 있을까?

미스터 올림피아는 주요 대회 수상 경력이 있는 정상급 선수만 참가할 수 있는 자타 공인 최고 권위의 보디빌딩 대회다. 축구로 치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한국인 선수가 MVP를 차지한 격이니 우리나라 선수가 미스터 올림피아가 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인에게 불가능은 없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13척으로 133척의 적군을 격파하며 기적에 가까운 승리를 일궈냈다. 그런 이순신 장군의 좌우명인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우리는 그의 뜻을 물려받은 자랑스러운 후예다. 이순신은 적을 알고 나를 앎으로써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으니, 역대 미스터 올림피아를 알면 우리도 언젠가 정상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 잘생긴 외모의 래리 스캇.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1965년 처음으로 열린 미스터 올림피아 대회 초대 챔피언 래리 스캇 (Larry Scott). 보디빌딩 마니아가 아니라면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래리는 170cm 신장에 90kg 체중에 육박한 당시에는 거대한 헤비급 보디빌더였다. 미국에선 그를 ‘The legend(전설) 혹은 ‘Golden Boy’라고 부른다.

미국 이다호주 동남부의 도시 포커텔로에서 태어난 스캇은 16살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그리고 1959년 20살이 되던 해 Mr. Idaho의 챔피언이 되고, 캘리포니아로 넘어갔다. 그 다음해부터 Mr. California(1960), Mr. Pacific coast(1961), Mr. America(1962), and Mr. Universe(1964)까지 매해 챔피언을 달성하며 그의 천재성을 세상에 알렸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모든 대회를 휩쓴 스캇은 조 웨이더(Joe Weider)가 미스터 올림피아를 창시한 1965년 첫 대회 미스터 올림피아까지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66년 미스터 올림피아의 왕좌에 오르면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보디빌딩계를 은퇴한다.

스캇의 보디빌딩 은퇴는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하지만 스캇은 자신의 두번째 결혼에 몰두하고 싶었고, 두번의 미스터 올림피아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경쟁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스캇은 이미 당대 최고의 보디빌딩 스타였고 각종 매거진에 자신의 이야기와 사진이 실렸으니 아마도 아쉬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이후 1979년 다시 미스터 올림피아 무대로 돌아왔지만 큰 성적을 내지 못한 채 그 다음해 다시 은퇴한다.


▲ 이두근을 보면 왜 미국에서 ‘스캇컬’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상완 이두근 매스가 남달랐던 스캇은 ‘플리쳐 컬’을 즐겼다. 이때문에 아직도 미국은 ‘플리쳐컬’을, ‘스캇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압도적인 상체 매스를 갖고 있는 세르히오 올리비아.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래리 스캇의 은퇴 후 3년간 세르히오 올리비아(Sergio Olivia)가 미스터 올림피아를 호령했다. 올리비아는 쿠바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다. 그리고 16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제안에 따라 입대를 하게 된다.

군 제대 후 올리비아는 해변에서 자주 놀았는데, 그때 해변에서 만난 친구를 따라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올리이바는 단 6개월 만에 150kg 용상이 가능했다. 역도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올리비아는 이후 1962년 쿠바 내셔널 역도 대회에서 2등을 기록하는 등 역도 선수로 활약하다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로 이주한다.


▲ 역도 대회에 참가한 세르히오 올리비아.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미국에서 올리비아는 철강 공장에서 하루 평균 10~12시간 일하고 남는 시간에 체육관에서 운동을 했다. 당시 ‘그 지역 대표 보디빌더보다 더 몸이 좋고, 무게를 많이 드는 청년이 등장했다’고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이런 올리비아기에 지역 보디빌딩 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올리비아는 1964년 처음 나간 Mr. Chicagoland contest 챔피언이 됐고 Mr. universe Contests에서 우승을 거둔다. 그리고 1967년 대망의 미스터 올림피아 정상을 밟는다. 쿠바 이민자가 가장 미국적인 운동의 선두주자가 된 것이다.

이후 올리비아는 3년간 챔피언의 자리를 지킨다. 1969년 마지막 대회 2등의 주인공은 다음 해 미스터 올림피아에게 자리를 넘기게 되며, 그의 등장은 보디빌딩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1969년 미스터 올림피아 2위에 오른 선수는 훗날 “처음 세르히오 올리비아를 봤을 때 왜 사람들이 ‘The Myth(신화)’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거대했고, 환상적이었으면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조차 안 들었다. 나는 지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 당시 세르히오는 나보다 나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살아있는 전설 아놀드 슈워제네거.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그 주인공은 전무후무한 보디빌더 아놀드 슈워제네거. 보디빌딩을 대중에게 알린 전설과도 같은 인물이다.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보디빌딩의 역사를 나눠도 된다고 전문가들이 말할 만큼, 그는 보디빌딩계의 독보적이고 유례없는 선수다.

잘생긴 외모와 완벽한 근육, 게다가 연기력까지 보유한 아놀드는 보디빌더를 넘은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티비와 영화 각종 브라운관을 점령했고 터미네이터로 세계적 스타 반열에 오른다. 1970년대는 바야흐로 그의 시대였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이야기는 ‘[룩인 더 올림피아] 역대 미스터 올림피아를 알고 있나요? Part.2’에서 이어집니다.

허준호 기자(hur.jh@foodnamoo.com)

<저작권자(c) 개근질닷컴,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등록 2019-06-12 16: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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